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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소리그림

이승현 풍물소리ㅣ스티로폼에 혼합재료 55×50cm 1993

이승현 풍물소리ㅣ스티로폼에 혼합재료 55×50cm 1993

 

나의 풍물이야기*
풍물에서 기본이 되는 기물(악기)은 꽹과리, 장구, 북, 징이다. 이것들을 쳐서 내는 가락들은 음악적인 요소가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실제 풍물판에서는 음악을 넘어서는 엄청난 기운이 있다. 풍물계에서는 이 기운을 이름하여 신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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꽹과리, 징, 장구, 북, 태평소 여러 악기가 신명 나는 우리 가락을 울려대면 소고잽이들이 날렵하게 뛰어오르고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채상놀이(상모)를 한다. 열두발 상모잽이가 나와서 갖은 재주를 뽐낸다. 잡색들이 탈을 쓰거나 기묘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갖은 익살을 떤다. 그렇게 치배(악기를 치는 사람들, cast)와 뒷패(여흥을 돋구는 조력자, staff), 그리고 관중이 하나가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까마득히 잊고 푹 빠져들게 된다. 그야말로 새 세상이 열리는 순간인 것이다.

이런 예술의 경지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행위예술이다. (흔히들 풍물을 종합예술이이라고 여기지만 학자들은 미분화예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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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진 풍물판의 느낌, 그 우렁찬 소리와 치배들이 뛰며 만들어 내는 군무의 화려하고도 풍성한 느낌을 표현하기에는 이 재료와 기법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스티로폼 바탕을 부분적으로 녹이면서 번들거리는 효과가 나도록 만들고 그 위에 여러가지 부적의 부분들을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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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풍물 이야기
1992년 처음 배웠다.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었지만 그 악기들을 직접 만져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장구, 꽹과리를 배우게 된 것이다. 갓 시작한 새내기의 눈에는 모든 게 신기하였다. 동료들과 모여 앉아서 장구 타법을 배우고 가락을 외우는가 하면 구음(입으로 가락을 노래 부르듯이 외우는 것)에 맞춰 원진(여럿이서 둥글게 원을 그림)을 이루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마치 새 세상이 열리는 듯했다. 그 후의 삶을 생각하면 실제로 새 세상이 열린 게 맞다! 적당히 1년정도만 배우고는 그만두리라 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여 년이 흐른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쨋든 어찌어찌 작업은 틈틈이 했으니 그나마 참 다행이다. 그러다보니 갓 40살 되던 해에는 무리해서 무릎 관절까지 다쳤었다. 그러고도 떠나질 못했다. 그러니 내 생애에서 3,40대는 거의 풍물에 몰입되어 떠돈 세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당시에는 그냥 몰입 그 자체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 의미를 냉철하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한 때는 허송세월을 했다고 여긴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와서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나에게 엄청난 자산이 되어 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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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