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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한글그림

이승현 한글그림 감6ㅣ판지에 아크릴물감 21×21cmㅣ2018

이승현 한글그림 감6ㅣ판지에 아크릴물감 21×21cmㅣ2018

 

 

본뜨기로 그렸던 그림들 중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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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제주, 내가 어릴 때 살았던 할아버지 댁에도 감나무가 있기는 했지만 그 열매가 너무 조그맣고 푸른 땡감이어서 떫기만 했었다. 그때 주전부리로는 고구마나 무 따위가 있었고 동네 또래들과 어울려서 들로 산으로 다니면 이것저것 따먹을 열매나 새순이 더러 있었으니 딱히 감에게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감에 대해서는 큰 기대 없이 지내다 보면 어른들은 땡감을 따서 소금물에 잘 우려두었다가 한겨울에 가끔 별미로 그것을 내어 놓으셨다. 검푸르딩딩한 것이 보기에는 별로 썩 내키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어보니 짭조름하면서 살짝 단맛이 나는 것이 색다른 맛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잠시였다. 역시 한겨울에는 군 고구마가 최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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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내가 잠시 맛보았던 홍시나 곶감의 맛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단맛도 있었던가. 부드럽고 달콤한 것을 입안에 듬뿍 베어 물면 몇 번 씹을 틈도 없이 퍼지는 단맛과 야릇한 감의 속살 냄새가 온몸을 부르르 떨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얼마 먹지 않아도 얼른 배가 부른 데다가 먹고나서 조금 있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며 목이 간질거리고 뭔가에 취한 듯 어지어질해 지는 것이었다.

아마 나는 감이 몸에 잘 맞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곶감의 고장 상주에서 30년을 훌쩍 넘게 살아오면서도 곶감을 맛으로만 어쩌다 가끔 즐겨 본 적이 있을 뿐이지 즐겨먹는 편은 아니었다. 지금도 거의 먹지 않는다.

오히려 감은 보는 멋이 있다. 특히 화창하게 맑은 초겨울 파아란 하늘에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빠알간 까치밥 몇 알은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훌륭한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들도 먹고살아라고 남겨줄 줄 아는 그 고운 마음이 꽃으로 피어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한다. 감히 어찌 그 깊은 멋을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감이 지니는 모양을 가지고 생각의 쪼가리들을 끄적거리며 맞추어 볼 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린 감 그림은 초라하기만 하다.

올 겨울에도 뒷산 둘레길을 거닐면서 마음껏 그 꽃내음에 취하게 될 것 같다.

 

 

*2018 개인전

상주전시 2018. 9. 7 - 9. 31 갤러리포플러나무아래 경북 상주시 지천 1130

서울전시 2018. 10. 27 - 11. 4 한글전각갤러리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