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
작업을 마음 놓고 하기 위해서는 좋은 도구가 가장 필요하다. 원하는 효과를 잘 내기 위해서는 재료와 모양이 알맞아야 한다. 나는 그런 점들을 고려해서 틈틈이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서 써 오고 있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만들다 보니 제법 격을 갖춘 도구들이 모이고 있다.
앞으로도 필요하면 수시로 만들어 쓸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재미있는 도구들이 많이 모이면 언젠가는 도구들을 이용해서 설치 작업을 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것이 또 다른 나의 작품세계가 될지도 모르겠고...
나의 이런 작업에 대해서 궁금해하던 어떤 이는 내 작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더니 미니 전동드릴로 섬세한 부분을 쉽게 작업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작업의 특수한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드릴은 고속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아크릴 물감에 연마 도구가 닿으면 순간적으로 마찰열이 발생한다. 그 마찰열 때문에 아크릴 물감이 타 녹으면서 새까맣게 눌어붙어버린다. 얼핏 생각하면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 써 보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서 쓰는 것이 훨씬 낫다. 기계로는 할 수 없는 불규칙하면서도 서툴게 나타나는(어찌 보면 잘 못 됐다고도 느낄 수 있는) 효과들은 오로지 내 손으로 만든 도구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땀을 흘려가면서 갈아주기 작업을 하는 이유는 또 따로 있다. 나는 반복되는 작업 중에 말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작업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기계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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