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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김용주展 '살아있는 바다’2021. 5. 1.(토)~5. 6.(목) 제주특별자치도문예회관 제1전시실

제9회 김용주展 (제주특별자치도문예회관 제1전시실)

 살아있는 바다

 

성산포의 아침 Acrylic on Canvas/130.3×581.7㎝/2021

 

빛과 생명의 거처 제주바다

이경모/미술평론가(예술학박사)  

제주에서 나고 자란 화가 김용주는 제주의 숲과 바다를 그린다. 작가는 1986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총 8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통해 제주의 자연을 선보여 왔다. 최근에는 눈에 보이는 풍경을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하고 재현하는 풍경화 장르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주바다를 연작하고 있다. 그 문제의식은 처연한 역사를 품고 있는 제주바다가 강한 에너지를 풍기며 대기를 머금고 빛을 발산하면서 나타나는 순간적 장면에서 조형적 가치를 탐색하거나 고향 바다가 지닌 땅의 의미나 역사적 진실을 묵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인문정신과 연관되어 있다. 그의 작업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매 순간 세심하게 짜인 느낌을 주지만 형태의 고정성을 포기한 그의 작업은 어떤 논리보다는 강한 예술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아울러 풍경을 그리는 행위가 배제시킬 가능성이 있는 제주 바다의 생명력을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아름답지만 이에 집착하지 않고 격정적으로 재현해 내는 회화적 실험을 보여 주고 있다.

빛나는 순간 Acrylic on Canvas/130.3×193.9㎝/2021

살아있는 바다

제주바다는 늘 요동한다. 제주의 환경이 바다를 평온하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여기에 의지해서 제주인들은 고기를 잡고 물질을 하며 삶을 지탱해왔다. 김용주는 어린시절부터 이런 제주바다를 보고 자라왔을 것이다. 잠시 평온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요동치는 바다는 스스로 생명이면서 또한 수많은 생명을 포괄하는 삶의 거처이다. 작가는 제주바다를 바라보면 누군가 검은 현무암 덩어리를 해변에 뿌려놓은 것 같다. 그 사이사이로 서 있거나 드물게 얼레짓을 하는 무수한 갈매기들이 하얀 물감으로 그어놓은 붓질 같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것들은 물결이고 돌덩이이고 갈매기이지만 결국은 한 획이라며 언젠가는 살아져버릴 몸짓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작가는 두 가지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그 하나는 표현의 대상으로 제주바다가 지닌 매력요인이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짝이는 물결이나 거친 파도, 그리고 바위 사이로 휘감아 도는 물길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헛된 것이라는 생각이다. 소위 윤슬 현상에서 작가는 바니타스(vanitas) 개념을 떠올린다. 작가는 이를 단순히 헛된 것이라는 고전적 개념보다는 고정된 형태개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유동하는 것이므로 그곳에 이런 형태가 있었다는 확대된 공간개념으로 대상을 해석하고 있다. 이는 형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대상을 해석하게 하고 보다 차원 높은 조형개념을 도출시킨다.

그의 살아있는 바다는 늘 빛을 머금거나 발산하고 있다. 그가 햇빛에 반사되어 순간적으로 빛을 발산하는 바다를 그린 <빛나는 순간> 연작에서 우리는 거의 단색조에 가까운 색채구사와 거친 필선의 운용으로 자연에 다가서고자 하는 그의 회화적 접근방식을 목도하게 된다. 김용주는 자연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도전의 가장 큰 목표는 현상의 본질을 구현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색은 김용주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언어인데, 주로 새벽녘, 노을 질 무렵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의 바다처럼 농도의 변화뿐 아니라, 두 세 가지 정도의 색만으로 조합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이렇게 인색한 색채 구사는 대상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자연의 경이로운 힘에 우리를 몰입시킨다.

 

형태의 실험과 생명의 표현

약 한 세기 전 대상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회화관의 해체는 색채의 해방 형태의 해체라는 양방향으로 전개된 바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20세기를 추상회화의 시대로 이끈 중요한 사건이다. 김용주는 여기에 규정된 관념마저 해체함으로써 회화를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자신도 이에 편승하여 표현적 자유와 회화적 실험을 즐기고 있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의 방법론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모든 재현 이미지는 존재와 부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의미가 확대·재생산되는 시뮬라크르적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가 형태라는 것은 잠시 그곳에 있었던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상함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자연체계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재현 이미지는 현상적 존재자가 아니라 그 현상적 존재자와 이어져 있는 배후의 어떤 체계, 여러 가지 표현 요소들을 지니는 역동적 체계라고 말한 들뢰즈(Deleuze)의 언명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그의 바다그림에서 보이는 생동적 체계, 힘들의 관계, 시간 간의 관계로써 존재하는 흑백 이미지는 현재적(actual)이지 않고 현상적으로 존재하지만, 현재적인 것만큼이나 실제적인 실재(existence)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기까지가 김용주가 말한 바다 개념의 축약적 내용이다.

형태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그의 바다그림은 건강한 활력을 보이며 왕성한 생명성을 보이는 격정적인 화면으로 우리를 이끈다. <세화리에서>, <평대리에서>, <사라짐>과 같은 작품들은 굳건한 바위와 조우하는 물결, 하늘과 바다가 분리되지 않은 일체감, 강박적으로 기교를 멀리하고자 하는 태도, 강한 명암대비를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는 방식 등 김용주 회화의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무엇을 그리려고 했다기보다는 붓의 간섭을 가능한 배제하고 물감 스스로 추동하여 활력을 보이도록 배려한 작가의 태도에서 우리는 모더니즘 시대 전능한 작가의 모습보다는 현상에 순응하는 동시대 장인의 모습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의도했던 안 했던 간에 회화적 기교를 그의 화면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거대한 횡폭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성산포의 아침>이나 <종달리의 아침>에서 그가 붓과 도구를 사용하여 해변에 뿌려진 현무암 덩어리와 하얀 물감으로 그어 놓은 물새들의 표현은 대단한 기교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서술한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무기교의 극치를 보여 주는 또 다른 <성산포의 아침>에서는 우리를 진정한 회화성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게 한다. 최소한의 형태와 색채로 작가는 동시대 회화의 진정한 가치를 모색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구현해 낸 것이다. 이처럼 형태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서투름을 들어내면서 그는 무한한 표현적 가능성과 자유를 얻었다. 그의 매력적인 바다그림은 점, , 획으로 이루어진 노동의 산물임에 틀림없지만 이의 기저에는 형태의 구속에서 붓을 자유롭게 방임함으로써 예기치 않게 얻어진 것들이 많다. 그리고 살아있는 제주바다는 이러한 그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작가는 소재를 찾기 위해 바닷가를 거닐다가 파도에 떠밀려온 나뭇조각들을 주워 작업실로 가져왔다. 풍상과 파도에 시달려 살과 결이 드러나 있는 이 오브제들은 스스로 깊은 회화적 질감을 보이며 화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화가는 주제를 집약시켜 간소한 그림을 그려 넣게 되는데, 이는 버려진 인공물의 편린이 예술가를 통해 생명성을 획득하는 미학적 문제뿐 아니라, 그 스스로 예술적 가치를 뽐내며 관객을 유혹한다. 그의 바다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환상과 현실성이 없는 환영으로 탈바꿈되고, 우리의 의식과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시뮬라크르를 지향하며, 파노라마적 재현이 이상적이고 새로운 유토피아의 모습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재현의 세계에서 현상적 진실과 거짓 없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의 바다를 참이라고 확신하지 않으며, 그것이 이상이라고 실망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과 견주고 싶어 한다. 이것이 작가의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분명한 것은 자명한 사실을 놓고 진짜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하면서 지적 흥미와 즐거움을 더해주는 유희를 작동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성산포의 아침 Acrylic on Canvas/130.3×193.9㎝/2021

 

서투름

예술가는 천재성과 성실함 이전에 사물과 현상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이를 자아의 언어로 진정성 있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김용주가 젊은 시절 발표한 그림들에서 필자는 그 시대 화가들이 느껴왔을 회화적 위기와 발언의 좌표를 상실한 예술가의 좌절을 목도한다. 당시는 민중미술로 대변되는 리얼리즘 미술이 대적할 상대를 잃고 투쟁을 멈추었던 시기였고, 추상미술로 대표되던 모더니즘 미술운동은 새로운 형상성이라는 기치로 새롭게 등장한 구상회화에 밀려 유랑할 때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뉴미디어를 내세운 영상설치미술이 미술표현의 주류를 형성하여 속속 등장한 국제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화가는 그려야 했다. 따라서 그가 1990년대 몇몇 개인전에서 발표한 그림들은 동시대 미술이 처한 상황과 화가의 대응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김용주는 거시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단순화하고 응축하는 모더니즘의 방법론을 계승하면서도 미시적으로는 추상 표현주의적인 태도, 즉 감성적 반응이나 기억, 심리적 인상 등을 통해 사물을 해석하고 있다. 젊은 김용주는 형상성과 추상성을 교묘히 조화시키면서 여기에 논리적 완결성을 지닌 기호나 형태로 자신의 작업을 엄호했던 것이다. 추상 표현주의적인 격정과 이를 제어하는 논리적 형상들이 화면에 조형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가운데 김용주 역시 이를 합리화시킬 무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김용주는 자신의 예술이 끊임없이 변해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작가적 내면도 작품의 본질적 양상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일례로 그가 20여년 전 발표한 <숲의 향연> 연작을 보면 최소한의 선과 색으로 그는 자신의 예술을 실험의 한 가운데에 위치시키고 주제를 집약시키고 있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인터뷰 중에 그가 나무는 서투름을 드러내기 쉽다고 말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가 자연과 타협하지 않고 색채를 금처럼 사용(惜墨如金)하는 것도 기교를 배제하고 불완전한 표현으로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닮아있다. 그의 그림은 재현을 목적으로 한 구상회화라기보다는 작가의 미적욕망이 완곡하게 제어된 추상회화에 더 가깝다. 추상성을 염두에 두고 화면의 기초를 다듬었을 뿐 아니라 제주바다를 염두에 두었으면서도 이와 별개의 절대성을 추구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의도가 이 점을 설명하고 있다.

김용주는 잘 그리는 것보다 많이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겸손한 어법은 다작 중에 수작이 나온다는 상투적 카논을 어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예술가는 장인으로서 끊임없는 노동을 통해 자성(自省)해야 한다는 작가적 태도를 강조하는 발언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완전무결함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적인 불신과 여전히 작가가 그의 작품에 기능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숙명적인 입장이 교차되는 김용주 회화의 이율배반이자 핵심적 요소이다.

행원리의 오후 Acrylic on Canvasㅣ130.3×193.9㎝ㅣ2021

 

빛나는 순간 Acrylic on Canvas/130.3×193.9㎝/2021

 

저녁 Acrylic on Canvas/130.3×193.9㎝/2021

 

침묵 Acrylic on Canvas/130.3×193.9㎝/2021

 

김녕리에서 Acrylic on Canvasㅣ72.7×116.8㎝ㅣ2021

 

들여다보기 Acrylic on Canvasㅣ40.9×53㎝ㅣ2021

 

 

들여다보기 Acrylic on Canvasㅣ53×72.7㎝ㅣ2021

 

 

들여다보기 Acrylic on Canvasㅣ72.7×90.9㎝ㅣ2021

 

들여다보기 Acrylic on Canvasㅣ130.3×193.9㎝ㅣ2021

 

빛이 날다 Acrylic on Canvasㅣ65.1×90.9㎝ㅣ2021

 

행원리의 오후 Acrylic on Canvasㅣ72.7×100㎝ㅣ2021